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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에 관한 성경적 교리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7회 작성일 19-11-02 01:04
Sermons on Prayers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제7장 금식에 관한 성경적 교리
 
1. 우리는 성경을 통해 기도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모범적인 기도도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기도 중 그 어느 것도 쇼핑 리스트를 외듯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는 주님 앞으로 나아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2. 신약성경에 나온 기도 중 오직 단 한번만 자신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있는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에서 자신을 위해 간구한 유일한 기도였습니다. 다른 모든 기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과 도움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반복해서 하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라면 우리는 주님께 계속 해서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 주지 않으시거나 더디게 응답해 주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구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오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잘 연구하지 않는 교리에 대해 공부할 것입니다. 이 교리는 육신이 원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쪽에 있기에 인기가 없는 교리 중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는 금식에 관한 교리를 공부할 것입니다. 신구약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먼저 성경에 나온 기도에 관한 여섯 가지 명령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금식해야 하는 열 가지 성경적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5.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을 육체가 아닌 성령님의 통제아래 두기 위해 투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교리를 실행하느냐의 문제는 그 교리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성경에 많은가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6. 성경에는 마약에 대한 직접적인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에는 코카인이나 마리화나에 대한 말씀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담배나 니코틴에 대한 말씀도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러한 것들이 아닌 성령님께 내어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7. 절제에 대한 설교는 인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통제 아래서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은 성령님의 통제를 벗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통제를 벗어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의 지배아래 살아갑니다. 선교를 지원할 돈이 없을 때에도 자신들의 배를 채울 돈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8. 마태복음 9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신랑이 혼인 방 아이들과 함께 있을 동안에 그들이 애곡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날들이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니라.”(마 9:15)
 
9. 성경에 의하면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금식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는지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금식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신랑이 없을 때에는 금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신랑이신데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시면 제자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때로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할 시기입니다.
 
10.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를 자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들이 선하게 사는 것을 책망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의를 신뢰하는 점이었습니다.
 
11. 마태복음 23장도 보겠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마 23:23) 3절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그들의 행위대로 하지는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
 
12 바리새인들은 자만심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드리는 십일조와 종교적인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자주 금식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위는 없기 때문에 위선자들이었지만 그들의 말은 그대로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13. 마태복음 5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14. 우리는 오늘 바리새인들이 왜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한 말은 옳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옳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자들이었지만 바른 것을 가르쳤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지 않은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5.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시면 제자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았던 바리새인들도 금식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 예수님만이 금식에 대해 가르치신 게 아닙니다. 금식은 초대 교회에서 실행하던 교리 중 하나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시킬 일을 위해 그들을 내게로 구별하라, 하시니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한 뒤 그들을 보내니라.”(행 13:2-3) 초대 교회에서 실행하던 것 중 하나는 기도하며 금식하는 것이었습니다.
 
17.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성도들은 자신을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보겠습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고후 11:27)
 
18. 성령님께서는 여기서 바울이 굶주린 것과 금식한 것을 구분해 주고 계십니다. 바울은 음식을 먹고자 했지만 음식이 없어서 먹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먹을 음식이 있었지만 먹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나면 자신의 제자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는 금식했습니다. 우리에게 본으로 주신 사도 바울도 여러 번 금식했습니다.
 
19. 한 가지 예를 더 보겠습니다. 성경은 금식이 건강한 혼인생활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서로를 속여 권리를 빼앗지 말라. 너희가 금식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동의를 구해 얼마 동안 그리하는 것은 예외이나 다시 함께하라. 이것은 너희가 참지 못함으로 인해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20.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본과 사도 바울의 본에 따르면 금식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금식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금식은 항상 음식과 음료에 대한 자발적인 거절입니다. 저는 지금 금식을 하면 건강 더 좋아진다거나 다이어트에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적인 금식은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고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21.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금식은 육신의 욕망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무엇인가를 먹기 원합니다. 그런데 금식을 함으로 더 이상 육신을 섬기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육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의미입니다. 육신은 무엇인가를 마시기 원합니다. 금식을 하므로 더 이상 육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22. 성경은 우리가 모두 육신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은 육신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만일 여러분이 자신은 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육신에게 내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보십시오. 아마 한 달간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찾게 될 것입니다. 하루 종일 아무런 음료도 마시지 않으면 며칠 동안 사막을 헤맨 사람처럼 음료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냉장고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환청이 들릴 것입니다.
 
23. 저는 “금식을 통해 건강해 지는 법” 혹은 “금식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모두 넌센스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음식을 원합니다. 금식은 건강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전환이나 다이어트를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금식은 오직 하나님만을 찾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24. 사람들은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너무 바빠서 주님을 찾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사람도 식사는 합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도 시장에 가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요리를 합니다. 아무리 바쁜 사람도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식사를 합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육신을 섬기는 데는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섬기는 것을 잠시 멈추면(금식하면) 하나님을 찾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25. 금식을 하므로 얻게 된 시간(식사 시간)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금식을 하므로 얻은 물질로 선교사역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명단을 만들어서 금식 지원자를 받지도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그리스도인들의 실행은 자신을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멈추고 그 시간에 하나님을 찾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26. 단순히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게 아니라 금식하는 사람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겠습니다. “또한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들의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금식할 때에 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네 얼굴을 씻으라. 그리하여 네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보이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마 6:16-18)
 
27. 하나님을 찾으려고 금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금식한다는 것을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수준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영적인 체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할 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세수를 하고 몸을 단장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적이라고 드러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육신을 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이제 이사야 58장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금식하였으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우리 혼을 괴롭게 하였으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는도다. 보라, 너희의 금식하는 날에 너희가 쾌락을 찾으며 너희를 위하여 모든 수고를 강요하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함은 다툼과 논쟁을 위함이요, 사악한 주먹으로 치기 위함이니 너희는 너희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들리게 하려고 이 날에 하는 것 같이 금식하지 말지니라. 그것이 내가 택한 그런 금식이냐? 그것이 사람이 자기 혼을 괴롭게 하는 날이냐? 그것이 갈대같이 자기 머리를 숙이고 자기 밑에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금식이라 하며 주께서 받으시는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택한 금식은 이것이 아니냐? 곧 사악함의 결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학대당한 자를 놓아주어 자유로이 가게 함으로 너희가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냐? 또 그것은 주린 자들에게 네 빵을 나누어 주며 내쫓긴 가난한 자들을 네가 네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냐? 또 네가 벌거벗은 자를 볼 때에 그에게 입히며 또 네가 네 살붙이를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터져 나오고 네 건강이 신속히 솟구치며 네 의가 네 앞에서 가고 주의 영광이 네 후위대가 되리니 그때에 네가 부르면 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으면 그가 이르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네 한가운데서 멍에와 손가락질하는 것과 헛되이 말하는 것을 없애고 네 혼을 이끌어 굶주린 자를 향하게 하며 고난당하는 혼을 만족시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올라 네 어둠이 대낮같이 되리라.”(사 58:3-10)
 
29. 우리는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줍니다. 만일 누군가 침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다면 그는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침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해 주셨는지에 대한 간증일 뿐입니다.
 
30. 금식도 이와 같습니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러나 의로운 삶을 살고 금식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통해 의로워지려고 했다가 주님께 책망만 들었습니다. 회당에서 모이고 헌금을 드리고 금식을 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악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았습니다.
 
31. 주님께서는 그러한 금식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며 온 마음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종교적인 행위를 한다해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고 나서 금식을 해야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금식은 쇼가 아닙니다. 금식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지가 중요합니다. 바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32. 이제 금식을 해야 하는 10가지 성경적 이유를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편 35편을 보겠습니다. “나로 말하건대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고 금식하며 내 혼을 겸허히 낮추었더니 내 기도가 바로 내 품에 돌아왔나이다.”(시 35:13)
 
33. 시편 기자는 금식을 하며 자신의 혼을 겸허히 낮추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만심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34.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우주를 주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죽은 동물과 채소 쪼가리를 입 속에 넣지 않으면 살아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식료품점에 가서 캔 속에 들어있는 것이나 라면 봉지 안에 있는 것이라도 입 속으로 넣지 않으면 결국 죽어버리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35. 자신이 능력 있고 강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침에 하나님께서 깨워주지 않으신다면 영원한 잠을 자는 게 인간입니다. 몇 일만 식사를 걸러도 모든 기력을 상실하는 게 인간입니다. 금식하며 자신의 혼을 겸허히 낮추었다는 것은 자신의 본연의 위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36. 시편 69편을 보겠습니다. “내가 울며 금식으로 내 혼을 징계할 때에 그것이 내게 모욕거리가 되었고”(시 69:10)
 
37. 금식을 하는 성경적 둘째 이유는 금식이 혼을 징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심에 감사 드립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38. 문제는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후에도 동일한 죄를 다시 범한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자신을 부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금식은 더 이상 육신을 만족시키며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통해 자신의 혼을 스스로 판단하며 징계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내리는 징계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 부모는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식사를 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금식도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배에서 빨리 음식을 넣으라고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육신이 원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39. 금식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식사대신 금식을 한다면 우리는 열렬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배가 고플 때마다 식사 대신 금식을 하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식사하는 것은 잊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금식은 식사 대신 기도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신호를 보낼 때마다 식사를 하지 않고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충분한 교제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뇌에서 밥을 먹으라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나는 오늘 식사를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 혼이 주님께 반역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주님 앞에서 온전해 질 때까지 육신의 필요를 채우지 않겠다.”라고 하는 게 바로 금식입니다.
 
40. 우리는 죄를 짓기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깨끗한 삶을 살기 원한다고 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는 실제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스스로를 판단하며 징계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금식은 혼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41. 금식은 혼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며 징계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육신은 죄를 짓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제 시편 109편을 보겠습니다. “내 무릎은 금식으로 인해 쇠약하며 내 살은 기름기가 없나이다.”(시 109:24)
 
42. 금식은 여러분의 육신을 약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여러분의 육신입니다. 육신을 이기는 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육신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계속 승리를 거둔다면 육신에게 더 이상 군량미를 공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식은 육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43. 욥기 23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분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 23:12) 저는 이 구절을 붙여놓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냉장고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는 이 구절을 냉장고에 붙여놨습니다.
 
4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간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과자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디저트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음식이라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45. 제가 만일 여러분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아마 대부분 손을 들 것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데 하루에 세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데는 몇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46. 욥은 필요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한 시간 동안 뷔페에서 식사하는 것과 한 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 중 선택하라고 하면 지체 없이 성경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아십니까? 금식을 통해 여러분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영에 속한 사람을 먹이기 보다는 육신에 속한 사람을 먹이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자신이 음식과 하나님의 말씀 중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금식을 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7. 전도서는 해 아래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6장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모든 수고는 그의 입을 위한 것이나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전 6:7)
 
48. 사람이 일하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한달 동안 열심히 일한 이유가 입에 음식물을 채우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만일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다면 아무도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모든 수고는 그의 입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이 끝났을 때 우리가 단지 입을 위해서만 산 것은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는 사실이 큰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49. 우리는 단지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크고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먹기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기 위해 식사를 거를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식사를 하지 않고 그 돈을 선교사역에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주님께로부터 “너는 입을 위해서만 살지는 않았구나. 너는 음식보다 더 고귀한 것을 위해 살았구나”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입을 위해 삽니다. 그러나 저는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50. 다시 이사야 58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가 택한 금식은 이것이 아니냐? 곧 사악함의 결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학대당한 자를 놓아주어 자유로이 가게 함으로 너희가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냐?”(사 58:6)
 
51. 금식을 하는 여섯 째 성경적 이유는 죄를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식을 하는 이유는 사악함의 결박을 풀고 죄를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욕을 이겨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거부하므로 육신을 부인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점에 있어서도 육신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52. “또 그것은 주린 자들에게 네 빵을 나누어 주며 내쫓긴 가난한 자들을 네가 네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냐? 또 네가 벌거벗은 자를 볼 때에 그에게 입히며 또 네가 네 살붙이를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7절) 금식을 통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금식을 하면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53. 제3 세계에는 굶주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수없이 많은 날을 굶주리다가 하늘나라에 가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그들처럼 굶주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굶주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기는 하지만 그게 다일 뿐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입니다.
 
54. 금식을 하므로 굶주리고 고난 받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제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냉장고에 먹을 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외식하고 싶을 때마다 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리고 있고 내일도 역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금식을 하므로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알게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5. 이제 신약성경에서 나머지 세 구절을 찾아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7장을 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마 17:21)
 
56. 이 구절은 금식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금식과 기도를 하고 나가 승리하는 것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만이라는 악한 사람에 의해 멸망 당하려 할 때도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금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백성이 구출되고 원수를 물리쳤습니다. 니느웨가 멸망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느니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구하며 금식하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를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려 했을 때, 주님께서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7. 우리는 어떤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오랜 세월 계속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하면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놓고 금식하며 기도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짓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금식하며 기도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계속 기도하고 말씀도 찾아보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역시 그에게도 금식하며 기도해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고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금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8. 금식을 하는 아홉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빌립보서 3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너희에게 말하는 많은 사람들 곧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느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수치스러운 일에 있고 그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빌 3:18-19)
 
59. 이 세상의 것들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자신들의 배입니다. 경배란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배는 사모함입니다. 경배는 시간을 내어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경배는 자신의 것을 희생해 가며 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를 섬기며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배를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배를 위해 돈을 지불합니다. 그들은 배를 섬깁니다. 그들은 배가 내리는 명령에 순종합니다. 배가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의 신입니다.
 
60. 성경은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원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1.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반복해서 세 번이나 기도하신 것을 살펴봤습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인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시겠다고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62.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지셨던 것과 같은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편안한 교회에 다니고 싶어하고 많은 수입을 올리고 싶어하고 병이 들면 항상 즉시 고침을 받기 원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원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지는 십자가 같은 것은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기는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63.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것들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기 원했습니다. 배를 섬기는 것을 그만두고 살아계시며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기 원했습니다.
 
64.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식사를 하지 않고 바로 두 시간 동안 기도회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집에 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오전 예배 후에 교회에서 출장 뷔폐를 불렀다고 하면 출석률은 신기록을 세울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내 배는 음식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우리가 배를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65.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5장을 보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for they shall be filled).”(마 5:6) 바른 마음과 바른 방법과 바른 동기로 하는 금식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도록 인도해 줍니다. 육신은 본능적으로 음식에 주리고 목말라합니다. 금식은 육신의 주림과 목마름이 아닌 의에 주림과 목마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돌리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면 여러분은 채움을 받을 것입니다(shall be filled). 식탁 위에 풍성한 음식이 가득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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